12·3 내란 판결과 사법부를 향한 국민의 분노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12·3 비상계엄을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형법 91조가 정한 내란죄 성립을 인정한 것이다. 헌법 77조가 정한 비상계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고,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이후 형사 책임 역시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판결 직후 법원 안팎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터져 나왔다.
“무기징역이 과연 역사적 단죄인가.”
“위로부터의 내란”… 그 위험성은 전례가 없다
앞선 판결들에서 재판부는 12·3 사태를 ‘위로부터의 내란’, 이른바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헌법을 파괴하려 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법원 판례가 다루어온 ‘아래로부터의 내란’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헌법을 위반할 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가 뿌리째 흔들린다.”
이 문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던 현직 최고 권력이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압박했다는 사실은, 30년 전 전두환의 내란과 비교될 만큼 중대한 사건으로 평가됐다.

특히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몇 시간 만에 종료됐다는 점은 “무장한 계엄군을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의 용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내란의 실패는 권력자의 자제 때문이 아니라,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기능 회복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기징역’… 양형 사유는 설득력 있는가
이번 재판부는 범행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 아니며,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난 점, 전과가 없고 장기간 공직을 수행했으며 비교적 고령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택했다.
그러나 비판론은 단호하다.
헌법을 위반해 이미 파면된 대통령이다.
형법상 국헌문란 목적 내란이 인정됐다.
현직 권력이 헌정질서를 공격한 사건이다.
이러한 사안에서 ‘전과 없음’이나 ‘고령’이 참작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전두환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사면이 이뤄졌지만, 사법부의 1차적 판단은 단호했다.

이번 사건 역시 전두환의 선고가 내려졌던 역사적 법정과 같은 공간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상징성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비판자들은 말한다.
“전두환보다 더 엄하게 처벌했어야 했다.”
현직 대통령의 내란은 헌정질서에 미치는 파급력이 훨씬 크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국민의 혁명을 외면했다”는 분노
12·3 밤,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이 있었다.
계엄군과 대치하며 본회의장 진입을 지켜낸 것은 무장 병력이 아니라 시민과 의원들의 결단이었다.
윤석열 탄핵과 엄정 처벌을 외쳐온 시민들의 ‘기적 같은 저항’은 이번 판결의 도덕적 배경이었다.

그런데도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일부에서는 “국민 감정에 반하는 미흡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내란 세력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유예했다”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국민이 지켜낸 민주주의의 순간을 판결이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와 사법 신뢰의 문제
이번 판결을 선고한 재판장은 지귀연 부장판사다.
그는 과거 성접대 의혹에 휘말린 바 있다. 법적 확정 여부와 별개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상태에서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는 점은 사법 신뢰에 또 다른 질문을 남긴다.
사법부는 판결로 말한다.
그러나 판결의 권위는 재판장의 도덕성과 투명성 위에서 세워진다.
사법부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재판의 배당·운영·윤리 검증 시스템이 충분히 설득력을 갖추었는지 되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두환의 사형, 그리고 오늘의 무기징역
전두환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치적 판단으로 사면됐지만, 사법부의 1차 판단은 헌정 파괴에 대한 최고형이었다.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당시의 사면 관행이 결국 “내란에 대한 역사적 단죄를 약화시켰고, 그 부메랑이 오늘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헌법 77조를 위반한 비상계엄, 형법 91조의 국헌문란 목적 내란.
요건은 모두 충족됐다고 법원이 인정했다. 그럼에도 최고형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과연 헌정 질서의 경고로 충분한가.
남은 과제: 단죄를 넘어 개혁으로

이번 판결은 분명 역사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법부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권력형 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은 충분히 엄정한가
법관 윤리 검증은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가
재판 배당과 사법행정은 완전히 투명한가
조희대 사법부는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무기징역이 끝이 아니라, 사법 신뢰를 회복할 구조 개혁으로 이어질 때만 이번 판결은 역사적 의미를 완성할 수 있다.
결론: 정의는 국민이 완성한다
12·3 밤, 민주주의를 지킨 것은 무기가 아니라 시민이었다.
법원의 무기징역 선고는 헌정질서를 다시 세우는 첫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질문은 남아 있다.
“헌법을 파괴한 권력에 대한 처벌이 과연 충분한가.”
사법부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판결은 기록으로 남겠지만 신뢰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판결문뿐 아니라, 그 판결을 둘러싼 시대의 요구까지 함께 기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