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왜 사형이 아니었나”12·3 내란 1심 판결… 양형 논란과 법리 위험성 전면 분석

2026년 2월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려진 무기징역 선고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하나의 굵은 선을 그었다.

형법상 내란 우두머리는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재판부는 그중 최저형을 택했다. 법적으로는 중형이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왜 사형이 아니었는가”라는 질문이 즉각 제기됐다. 판결 직후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법정 최저형을 선고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국민의 법 감정에 반하는 미흡한 판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단순히 형량의 높고 낮음을 둘러싼 감정적 반응을 넘어, 판결문에 담긴 법리 구성과 사실인정 방식, 그리고 양형 판단의 기준에 대한 구조적 문제 제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형법이 금지하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 즉 내란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정한 데 있다.

재판부는 군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상당 기간 저지·마비시키려 한 일련의 행위를 종합해 내란 우두머리죄를 적용했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을 통해 밝힌 위헌성 판단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며, “위로부터의 내란”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던 다른 재판부의 판시와도 궤를 같이한다. 국민이 선출한 최고 권력이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했을 때 민주주의의 근간이 얼마나 깊이 흔들리는지를 확인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판결의 결론이 아니라, 그에 이르는 과정과 논리 전개 방식에서 불거지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비상계엄 선포 자체에 대한 법리적 접근이다. 헌법 제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실체적 요건과 국무회의 심의, 국회 통고 및 해제 요구권 존중이라는 절차적 요건을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이 실체적·절차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미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 자체는 원칙적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며, 발동 요건의 위반 여부는 형사책임 판단의 중심이 아니라는 취지로 설시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대목이 향후 통치행위론을 다시 확장 해석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한다.

계엄 발동 요건 위반이 형사적 책임의 핵심이 아니라면, 대통령은 실질적 통치행위라는 명목 아래 폭넓은 면책 논리를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일부 법학자들이 주장했던 통치행위 면책론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판부가 “이 사건의 핵심은 군을 국회로 보낸 것”이라고 규정한 부분 역시 논쟁적이다. 비판론은 내란의 본질이 실체 요건 없는 계엄 선포 그 자체에 있으며, 국회 침탈은 그 실행 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만약 판결 논리대로라면, 국회에 직접 병력을 투입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교통·통신을 차단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헌법기관을 마비시켰다면 내란 성립이 어려웠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법리의 초점이 지나치게 협소하게 설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내란죄의 구성요건인 ‘국헌문란 목적’에 대한 설명 과정에서 로마 공화정과 찰스 1세 처형, 대만·일본 판례까지 장황하게 언급한 점은 오히려 우리 형법 제91조의 명확한 문언과 형법 제정사를 중심으로 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문제를 불필요하게 우회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일부 피고인에 대해 국헌문란 목적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않다며 무죄를 선고한 부분도, 고위공직자가 국회에 병력을 동원하는 행위의 위헌성과 위험성을 상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남겼다.

사실관계 판단에서도 이견이 존재한다. 재판부는 무력행사가 대규모로 확대되지 않은 점을 일정 부분 피고인 측 요인으로 해석했지만, 헌법재판소와 다른 재판부는 이미 계엄이 실패로 끝난 배경을 시민 저항과 군·경 내부의 소극적 대응에서 찾은 바 있다. 무장한 병력에 맞서 국회 본회의장 진입을 지켜낸 것은 계엄권자의 자제가 아니라 시민과 의원들의 저항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판결문이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무력 자제를 일정 부분 참작한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인정의 일관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양형 판단은 이번 판결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 지점이다. 재판부는 범행이 치밀하게 계획된 것은 아니며 대부분의 시도가 실패로 끝난 점, 전과가 없고 장기간 공직을 수행했으며 65세의 비교적 고령이라는 점을 참작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택했다. 그러나 비판론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례를 상기시키며, 현직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파괴한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더 엄중한 처벌이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65세를 고령으로 본 판단 역시 설득력이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평균 기대여명이 20년 이상인 현실에서 이를 중대한 참작 사유로 삼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판결은 내란을 인정하고 중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방어선이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판결문이 남긴 법리적 빈틈과 서술 방식의 문제는 향후 항소심에서 다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은 단순히 형량을 조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계엄의 실체·절차 요건 위반이 형사책임에서 갖는 의미, 국헌문란 목적 판단의 기준, 사실관계 인정의 경중과 선후를 보다 명확히 정리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444일 만에 내려진 1심 판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번 판결이 역사적 이정표로 남을지, 아니면 반면교사로 기록될지는 항소심과 대법원의 최종 판단,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시될 법리적 설득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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